반응형

세계의 화장품 역사

세계의 화장품 역사는 원시시대의 화장품이 현재의 화장품과 구별은 되지만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7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메르족의 묘에서 발견된 지방에 향을 넣은 고대 화장품과 화장거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화장품의 기원 또한 확실하지 않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이집트에서 연지와 분이 제조되었다는 기록과 동양 각국에서 붉은색을 사용해 화장을 했다는 기록 등을 보아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1. 이집트 시대

최초의 화장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3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시대이고 따라서 화장품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를 중심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집트의 화장품에는 미이라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향유 외에 머리에 사용했던 염색제, 파마제, 오일 등이 있는데 특히 목욕 문화가 발달하여 목욕용품과 향유가 발달하였습니다. 이집트의 화장은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으며 붉은색의 헤나 염료와 이끼에서 얻은 보라색 리트머스, 흰색의 백납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곤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 코올을 이용하여 눈 화장을 하였습니다. 당시 상점에서는 향수, 향료, 약용식물, 송진, 염료, 기름등을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였으며 빗, 거울, 핀, 면도기 등의 다양한 미용도구도 판매되었습니다.

2. 그리스 시대

그리스인들은 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 시대의 화장은 미용적인 측면보다는 의학적인 측면에 주로 초점을 맞춰져 있습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식사요법, 마사지, 운동, 햇빛, 목욕 등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피부관리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현대의 미용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갈레노스는 이집트 화장품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였고 피부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피부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현대에도 사용하고 있는 콜드크림을 제조하였습니다.

3. 로마시대

로마시대의 화장은 귀족과 여성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이 당시 화장은 남녀 모두에게 행해졌고 물질적인 중요와 생활의 여유에 대한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민주정치와 자유토론 정치를 이루었던 로마 시민들은 토론을 즐기는 사교장으로 대중목욕탕을 이용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목욕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남성들은 증기탕, 향유, 마사지, 향수 등을 즐겼고, 상류계급의 여성들은 피부 마사지, 색조화장, 페디큐어, 매니큐어, 머리손질 등을 선호하였습니다. 이들은 흰 피부를 선호하여 납이 들어 있는 백연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안색이 변하고, 치아가 검어지는 등의 건강 이상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눈 화장은 안티몬이나 샤프란으로 검게 칠하고, 볼에는 아르칸나나 연단으로 붉게 치장하고 머리카락은 금발로 염색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4. 중세시대

중세 초기에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영향 및 기독교적 금욕주의 사상으로 화장이 금기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안티몬과 향유 등의 진기한 화장 재료들이 동양의 문물로부터 전해지고 의학과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으며, 중세 말기에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와 같이 여성들 사이에 창백한 피부, 넓은 이마, 갈색 아치형의 눈썹, 장밋빛 작은 입술, 가지런한 손톱 등이 유행하였습니다. 비누도 대중화되어 8세기에 이미 작은 규모의 비누공장이 이태리와 스페인에 세워졌으며, 1200년경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 세워진 비누공장이 성업을 이루었습니다.

5. 르네상스 시대

십자군 전쟁과 마르코폴로 등의 영향으로 인도와 동양의 문물을 접한 유럽은 향장과 향료 연구에 큰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염료, 식물류, 나무껍질, 석면, 산화아연, 석유, 향신료 등의 교육 기록이 있고 유화와 염료뿐 아니라 색조화장에 새로운 색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알코올을 이용한 증류 방법을 알아내어 알코올이 정식으로 향수류에 쓰이게 된 것입니다. 15세기에는 머리를 뒤로 모아 쪽을 짓고 눈썹은 밀어서 가능케 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루주와 분은 아주 흔한 화장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포마드를 비롯하여 각종 항수류나 향장품을 일반인들도 만들어 사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6. 바로크/로코코 시대

17세기는 예술의 발전, 종교개혁, 자본주의의 출현, 식민지 개척 등의 영향으로 개인주의와 향락주의의 쾌락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상류층 여성들은 살색, 핑크색의 창백한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서 백연을 사용하였고, 17세기 후반에는 실크나 벨벳으로 만든 뷰티 패치를 이용하여 여드름이나 천연두의 흔적을 감출 수 있게 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17-18세기에 걸쳐 향수 제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스페인에서 수입한 아몬드, 연고, 코코아 버터, 바닐라 등을 이용하여 크림으로 된 피부 세정제가 만들어졌으며 영국에서 청교도나 퀘이커 교도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목욕을 위해 1614년 처음으로 비누가 생산되었으나 정부의 규제로 2세기 동안 높은 과세에 묶여 있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가받은 약국이 출현함에 따라 향장 업이 공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화학이 학문적으로 정립됨에 따라 향장 업 또한 과학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7. 근대 이후

산업혁명의 영향은 화학분야에도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화장품의 성분 및 제조술의 개선과 품질의 개량을 가져왔습니다. 1866년 산화아연을 개발하여 백납분보다 안전한 새로운 분을 유럽뿐 아니라 미국까지도 공급하였고, 19세기 중반부터는 자연주의의 여향으로 일반 여성들은 화장에 있어서 색조보다 위생과 청결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 가정에 샤워실 또는 목욕실을 만들어 목욕의 횟수를 늘리고 그에 따라 세정용 비누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며, 두꺼운 화장은 연극이나 무대로 한정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의학과 유기화학의 발달로 새로운 화합물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발표되었고 1828년 프랑스의 겔랑, 1852년 영국이 비참, 1886년 미국의 해리엇 험버드등에 의해 현대적 의미의 화장품이 만들어졌습니다. 20세기에는 1901년에 만들어진 마사지 크림을 기점으로 브렉 회사에서 1907년에는 샴푸를, 1908년에는 색깔 있는 손톱 렉커를 생산하였습니다. 1930년대에는 자외선 차단제가 개발되어 인기를 모았고, 비누 성분이 없는 샴푸가 제조되었으며 가열하지 않는 콜드 파마 법이 개발되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호르몬 크림이 제조되었고 헤어스프레이, 탈취제, 땀 방지제 등을 담은 에어로졸 용기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950년대 이후에는 합성세제, 유화제, 땀 방지 화장품, 에어로졸 향장품, 머리 염색약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발전과 함께 각종 화학 화장품에 대한 부작용 또한 점차 증가함에 따라 약리적, 미생물적 해독작용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각종 첨가물에 대한 규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